[논단]비과학이 만든 GMO 공포
GMO 완전표시제는 지난 5월에 확정된 ‘110대 국정과제’에서 찾아볼 수 없다. 지난 정부 5년 동안 뜨거운 감자였던 완전표시제는 과학적 근거도 확실하지 않고, 현실적으로도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과도한 규제라는 사실을 인수위가 뒤늦게 깨달은 결과였다. 물론 소비자의 알 권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충분히 예상되는 소비자의 부담과 혼란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완전표시제 논란의 핵심은 GMO 유전물질(DNA)을 제거한 지방·단백질·전분당·식용유 등의 중간원료다. GMO 유전물질을 제거해버린 중간원료는 비(非)GMO로 생산한 전통적인 중간원료와 구분이 불가능하다. GMO에 들어있는 탄수화물·지방·단백질 등의 성분들이 화학적으로 완벽하게 동등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에서의 혼란은 필연이다. 생산자가 값싼 GMO로 생산한 중간원료를 비(非)GMO 제품이라고 우기면 소비자는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모든 생산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지 않는 한 GMO 완전표시제가 제대로 정착될 가능성은 기대할 수 없다. 수입식품의 경우에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그렇게 어설픈 제도가 국제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은 없다. 자칫하면 심각한 통상마찰이 발생할 수도 있다.
사실 GMO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은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농작물과 가축의 유전자를 ‘변형’ 또는 ‘조작’한 것은 GMO만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재배·사육·양식하는 모든 농작물·가축·어패류의 유전자도 ‘품종 개량’을 핑계로 인위적으로 변형·조작한 것이다. 유전자를 변형하지 않으면 사과와 딸기를 더 달고, 크게 만들 수 없다. 인류는 1만2000년 전 ‘육종(育種)’이라는 잡종교배를 이용한 유전자 변형 기술을 개발했다. 농작물과 가축의 유전자를 우리 입맛에 맞도록 인위적으로 변형한 것이 인류 문명의 시작이었다.
GMO에 사용하는 유전자를 변형하는 기술이 달라졌을 뿐이다. 유전자 ‘재조합’ 또는 ‘편집’이라고 부르는 첨단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다. 농작물과 가축의 유전자를 변형한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육종 기술과 조금도 다르지 않지만 잡종교배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기술이다. 유전자를 변형하는 기술을 바꿨다고 소비자가 불안에 떨어야 할 이유는 없다.
육종 기술을 이용해서 더 크고, 단맛을 강화한 신품종의 과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안전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속이 파란 수박을 거부하는 소비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소비자들이 GMO의 안전성·환경성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은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전 세계의 과학기술계가 GMO의 안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도 세계에는 7억9500만명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소비자의 불안을 부추기는 엉터리 주장에 영혼을 빼앗기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덕환(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https://view.asiae.co.kr/article/2022120815303080294 2022.12.08 15:30
[이덕환의 과학세상] (409) `MSG` 오해와 진실
`해롭지 않은 천연 조미료` 적당한 섭취 바람직
어느 종편의 MSG 유해성 논란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는 전문성이 의심되는 교양서와 구글을 새로운 정보원으로 들고 나왔다. 어설픈 교양서적 몇 권과 정체불명의 인터넷 정보로 과학적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 마지못해 미국 식품의약청(FDA)의 공식 입장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시청률에 집착하는 종편의 모습이 안쓰러운 형편이다. 황당한 편견을 앞세워 세계적 전문기구의 권위를 무시하고,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종편에서 소개한 `고약한 맛 속에 감춰진 MSG 증후군'과 `흥분독성: 죽음을 부르는 맛'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메스꺼움, 복통, 더부룩함, 근육 경직, 가슴 압박감 정도는 약과다. 식도역류, 비만, 설사, 위경련, 우울증, 시각 이상, 불면증, 주의력 결핍, 관절염, 발진도 들먹인다. 호르몬 이상, 내분비계 이상, 간질, 발작, 경련, 고혈압, 저혈압, 뇌졸중, 암, AIDS도 모자라서 심장 승모판 이탈 증후군,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루게릭병, 헌팅턴 무도병, 근위축증이 모두 인공 MSG 때문에 발생하는 병이라고 한다. MSG는 만병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낯선 과학 용어로 가득 채워진 교양서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종편이 소개한 교양서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두 저자 모두 미국 중소도시의 은퇴한 임상의사다. MSG 증후군의 조지 슈바르츠는 학술연구 경력이 전혀 없는 응급의학 전문의였고, 흥분독성의 러셀 블레이록은 고작 9편의 논문을 발표한 경력의 신경외과 의사였다. 두 사람 모두 인공 MSG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공 MSG 사용이 흔치 않은 미국 중소도시에서 그런 환자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충분한 연구 경력도 없다.
두 저자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슈바르츠는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에서 MSG 거부운동을 펼치고 있는 `NoMSG'라는 시민단체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책에는 NoMSG 대표인 캐스린 슈바르츠가 쓴 서문이, 블레이록의 책에는 슈바르츠가 직접 쓴 서문이 있다. 블레이록은 유사(類似)과학적 주장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공 MSG의 흥분독성도 학술적으로는 인정을 받지 못한 그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결국 종편이 새로운 근거로 제시한 교양서는 MSG에 거부감을 가진 시민단체의 홍보용 책자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판되는 MSG가 사탕수수를 미생물로 발효시켜 분리한 천연 발효 조미료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그런 MSG가 화학조미료라고 알려진 것은 1993년 노이즈마케팅을 시도했던 `맛그린'의 엉터리 광고 때문이었다. 미국의 저자들이 MSG를 인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MSG가 단백질 산(酸)분해 공법으로 생산되는 것이라는 오해 때문이다. 단백질을 강산으로 분해하는 산분해 공법은 이미 1960년대에 폐기된 낡은 공법이다.
전 세계의 생리학자와 식품영양학자들이 엄격한 학술연구를 통해 발표한 우마미 맛을 내는 MSG의 생리효과에 대한 학술논문은 2000편이 넘는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우리나라,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의 식품안전 관리기관들이 모두 MSG를 안전한 식품첨가물로 인정하는 것은 학술연구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UN과 여러 국가의 전문기관들이 책임지고 내놓은 공식입장 대신 어설픈 주장에 속아넘어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MSG가 천연 발효 조미료라고 무작정 많이 먹어도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생리적으로 MSG에 과민증상(알레르기)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한꺼번에 지나치게 많은 양의 MSG를 먹으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화(禍)가 되는 법이다.
이덕환(서강대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https://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3042902011176650003 2013-04-28 20:38
[이덕환 칼럼] 백신도 없이 방역에서 발 빼는 정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대책이 '문 닫게 하는 방역'에서 '스스로 실천하는 방역'으로 전환된다. 방역대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주장이다. 결국 정부가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방역에서 발을 빼겠다는 뜻이다. 변종 바이러스까지 확산되고 있는데 백신조차 기대하지 못하고 오로지 마스크와 거리두기만으로 코로나19를 극복해보라는 정부의 주장은 황당한 것이다. 빠르게 진정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당혹스럽다.
코로나19의 감염 상황이 도무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확진자의 80%가 수도권에 집중되고, 감염재생산지수도 2주 연속 1.0을 넘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집단감염과 조용한 전파가 계속되고 있고, 신규 감염자의 해외 유입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정말 심각한 것은 3차 확산 기간 중의 치사율이 일본(1.7)·미국(1.8)은 물론 세계 평균(2.2)까지 훌쩍 넘어선 2.8까지 치솟았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감염자의 치료에 충분히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국·남아공·브라질의 변종이 거의 실시간으로 국내에 전파되고 있는 현실도 심각하다. 정부가 해외 입국을 완전히 차단하거나, 공항에서의 방역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방역 전문가들의 상식적인 요구를 고집스럽게 외면해버린 결과다.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구해놓은 백신에 대한 정부의 결정도 비겁하고 부끄러운 것이다. 65세 이상의 고령자에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접종할 것인지 처음엔 외국의 사례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가, 나중엔 현장 의사들에게 떠넘겨버렸다. 황당한 결정이다. 백신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전문성도 없는 현장 의사가 접종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은 전혀 없다. 책임을 의사들에게 떠넘긴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는 65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접종을 않기로 했다. 백신 접종 지침을 다시 번복한 것이다. 갈피를 못 잡는 정부 태도는 이미 신뢰를 잃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비겁한 정책은 내놓지 않는다. 정부가 구해온 백신의 접종에 대한 책임은 온전하게 정부가 짊어지는 것이 순리다.
지난달 18일 '사회성을 길러주고, 부모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대면 수업을 강조했던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발언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학교에서의 대면 수업은 부모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사회성을 길러주는 것도 학교 교육의 본질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의 공식 발언은 지나칠 정도로 무겁고 신중해야만 한다. 장관·정치인들이 대통령의 발언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의 감염 상황이 미국·유럽보다 나은 편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방역이 성공적이었다는 정부·여당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하루 감염자가 1000명 수준까지 치솟았던 3차 확산은 우리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다른 나라와의 어설픈 비교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국민들이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발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국무총리가 일방적으로 읽어 내려가는 정부의 일방적인 대책에서 합리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코로나19의 부담을 아무 대책 없이 식당·카페·노래방에게 떠넘겨버린 것도 문제다. 수영장의 샤워는 괜찮고, 헬스장의 샤워는 안 될 이유도 없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정치적 목소리를 억누르는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정치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먹이는 '퍼주기식 지원금'의 진정성도 의심스럽다. 국가 재정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제멋대로 쓸 수 있는 '화수분'으로 여기는 정부·여당도 볼썽사납다. 그러나 뒤늦게 나서서 점잖은 발언으로 명분만 챙겨가는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모습도 볼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부가 설득력이 있는 확실한 방역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감염력과 위험성이 훨씬 더 강한 것으로 알려진 변종 바이러스의 전국적 확산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감염자를 가려내서 추적하는 기존의 전략 외에 신속 항원·항체 키트를 이용한 감염 상황의 감시·완화(surveillance and mitigation) 전략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운영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실무자가 마련해준 원고나 읽어주는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장관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 밀실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방역' 대책은 설득력이 없다. 승격과 함께 뒷전으로 밀려나버린 질병관리청이 방역의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세계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를 정치적 이유로 내쳤던 트럼프 행정부의 참혹한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https://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21022302102269073001&ref=naver 2021-02-22 19:37
[이덕환의 과학세상] (636) 수소수
'만병통치 효과' 엉터리 상술로 포장
물에 녹은 산소 의학효능 입증안돼
마시는 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도무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요즘은 노화를 막아주고, 암을 치료해준다는 '수소수'가 과학상식이 부족한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정체불명인 알칼리환원수의 효능을 강조하다가 이제는 수소수로 전향을 해버린 전문가도 있고, 엉터리 수소수를 만병통치약으로 홍보해주는 무책임한 언론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소비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의 소중한 건강을 엉터리 상술에 맡겨버릴 수는 없다.
화학물질의 생리 효과는 양(量)에 비례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너무 적게 먹으면 아무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물론 너무 많이 먹어도 문제가 된다.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의 독성도 마찬가지다. 화학물질은 우리 몸에서 화학반응을 통해 다른 물질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약효나 독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수소수에 들어있는 수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작은 분자인 수소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다. 우리가 마시는 물 1리터에 들어있는 수소의 양은 나노그램(10억분의 1그램)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기압에서 수소를 억지로 포화시켜도 1리터의 물에 1.6밀리그램(1.6ppm)이상을 녹일 수가 없다. 아무도 어길 수 없는 엄격한 자연법칙이다. 정밀 분석기기로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양의 수소에서 기적의 효능을 바랄 수는 없다.
독일 노르데나우의 폐광에서 솟아나는 샘물, 일본 큐슈에 있는 히타 온천수, 멕시코의 트라코테 샘물, 프랑스의 루르드 샘물에 수소가 많이 녹아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하의 토양에 포함된 베릴륨·마그네슘·칼슘 등의 알칼리토금속이 물과 반응해서 만들어지거나, 박테리아나 조류(藻類)가 만들어낸 수소 때문이다. 그렇다고 화학 법칙에 어긋날 정도로 많은 양의 수소가 녹아 있을 수는 없다. 기적의 효능은 관광객을 노린 상술일 뿐이다.
시중에서 비싼 값에 유통되는 수소수는 산업적으로 생산한 고압의 수소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기분해 등의 화학적 방법으로 발생시킨 수소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수소수의 생산방법에 상관없이 뚜껑을 열어두거나 온도가 올라가면 녹아있던 수소는 곧바로 공기 중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수소수를 통해서 효능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수소를 흡입하기는 어렵다.
수소의 의학적 효능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약한 환원력을 가진 수소를 질병 치료에 이용해보겠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체 효능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다. 수소수 광고에 자주 소개되는 일본의과대학의 오타 시게오 교수의 2007년 네이처 메디신 논문도 그런 수준이다. 기체 상태로 주입한 수소가 뇌세포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 중 일부에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실험에 사용한 수소는 물에 녹아있는 수소가 아니었다. 수소의 생리적 부작용에 대한 확인도 필요하다. 그런 정도의 실험으로 수소수의 효능을 입증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억지다.
만병통치의 효과를 자랑하던 '기능수'는 수소수만이 아니다. 1980년대의 '육각수'에 이어서 등장한 이온수·파동수·알칼리환원수·해양심층수·게르마늄수 등이 모두 암·치매·당뇨 등의 고질적인 만성질환에도 놀라운 효능이 있다고 야단이었다. 물론 실제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엉터리 기능수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기도 시들해졌다. 요즘 언론과 인터넷에 요란하게 소개되고 있는 수소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수소수를 통해서 인체에 흡수될 수 있는 수소의 양이 효능을 기대할 정도로 많을 수가 없고, 수소의 생리효능도 의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판적 합리주의를 강조했던 영국의 과학철학자 칼 포퍼에 따르면 만병통치약은 실제로 아무 병도 고쳐주지 못한 약이다. 물이 우리의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물이 질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합리적이다. 건강은 기적이 아니라 건강한 상식으로 지켜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장
https://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8012402101476788001 2018-01-23 17:43
음이온·게르마늄 팔찌…日서 온 사이비과학
혈액형별 성격 차이, 건강에 좋은 게르마늄 팔찌·음이온….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이 같은 얘기는 모두 과학적 근거가 희박해 유사과학 혹은 사이비과학으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허황된 사이비과학은 모두 일본에서 시작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수소수, 육각수 등도 모두 부실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일본에서 시작돼 한국으로 넘어왔다.
올해 들어 '라돈 사태'를 일으킨 음이온은 대표적인 사이비과학이다. 음이온은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나 분자가 음의 전기를 띠고 있는 전자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1990년대 말 일본에서 갑자기 건강에 좋다고 입소문을 타면서 선풍기와 제습기 등 여러 제품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음이온을 적용한 제품은 한국으로 넘어와 판매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음이온이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판정을 내린 바 있다.
게르마늄 팔찌를 선두로 한 건강팔찌 역시 마찬가지다. 1970년대 후반 일본에서 산화게르마늄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식용 보조제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후 혈액순환 개선과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게르마늄 팔찌·목걸이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르마늄 보조제는 신장 기능 이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특별한 효능을 기대할 수 없는 게르마늄 팔찌·목걸이는 여전히 팔리고 있다.
노벨 과학상만 22명을 배출한 과학 강국 일본에서 이 같은 사이비과학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과학이 일반 국민에게 녹아들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 과학을 받아들인 뒤 과학기술 분야에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앞선 나라가 됐다. 이 교수는 "과학을 통해 나라를 일으키자는 게 당시 일본 권력층 인식이었다"며 "엄청난 투자로 과학자들은 뛰어난 성과를 냈지만 국민과 과학이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제도를 받아들인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중국과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는 '샤머니즘' 등 비과학적인 성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며 오랜 기간 머물렀던 염한웅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자제어저차원전자계연구단장은 일본이나 한국 모두 유사과학, 사이비과학을 받아들이는 데 큰 거부감이 없다고 설명한다. 염 단장은 "아시아는 근대과학을 도입한 지 길어야 100년인데 과거 수천 년 동안 현대 과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다"며 "이는 일본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아시아를 비롯한 전반적인 문화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염 단장은 "유사과학을 이용한 제품 외에도 다양한 비즈니스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되고 5~10년 뒤 한국에서 이를 모방해 출시되는 경향이 높다"며 "한국 또한 무비판적으로 유사과학적 내용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유사과학을 구별해내려면 항상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은 물론 일부 도서는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돌리면 전자파로 인해 건강에 좋지 않은 물질이 만들어진다'와 같은 '전자레인지 괴담'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말한다. 이럴 때 전자파가 실제로 음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자레인지 괴담에 대한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이 교수는 "유사과학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에게 특별한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특정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면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런 주장은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원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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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k.co.kr/news/it/9005573 2019-10-02 16:54:46
게르마늄 팔찌 이어 '미세전류 팔찌' 등장,
SNS 건강제품 주의보
"생체에너지 채워 코로나 예방" 마스크팩, 탈모치료기 등 광고…전문가들 "의학적 근거 없어"
[비즈한국] ‘미세전류’는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걸까.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세전류가 하나의 키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미세전류를 활용한 탈모 치료기나 마스크팩은 물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미세전류 마스크까지 나왔다. 착용하기만 하면 기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미세전류 팔찌도 있다. 과연 업체의 홍보 문구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미세전류 팔찌’로 생체에너지 채울 수 있다?
“미세전류로 부족한 ATP(생체에너지)를 채울 수 있습니다. 건강식품은 오래 먹어야 생체에너지가 나오지만 이제는 직접 채워야 합니다.” 최근 유독 눈길을 끄는 제품은 SNS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미세전류 팔찌’다. 이 제품은 생체 전류와 가장 흡사한 미세전류를 통해 생체에너지를 채워 인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노년층부터 성장기 영양이 부족한 어린이까지 연령을 불문하고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가격은 10만 원대로 저렴한 편은 아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는 특허를 획득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토르말린이라는 광물을 이용해 미세전류 발생의 효율을 높였다는 내용이다. 이 업체는 “일반적인 기술은 토르말린의 음이온 방출 현상을 그대로 차용했다. 토르말린에 대한 미약전류를 추출해 필요한 곳에 전달하거나 미약전류의 전력 효율을 향상시키는 방안은 개시된 바 없다”며 특허 출원 이유를 밝혔다. 미세전류 측정 시험성적서와 방사선량 시험성적서도 보유하고 있다고 광고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ATP는 식품 섭취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인데, 미세전류로 생체에너지가 생성된다는 이야기에 의구심을 표했다. 최낙언 식품공학자는 “생명체가 움직이려면 혈소와 단백질이 방향성 있게 움직여야 하는데 ATP가 그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이 먹는 목적의 80~90%는 ATP를 만들기 위해서다”며 “미세전류로 ATP를 만들 수 있다고 하면 사람이 먹을 필요가 없다. 세계적으로 식량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광고의 제품은 의료기기도 아닌 공산품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는 “팔찌에 사용했다는 토르말린은 아주 값싼 돌덩이다. 토르말린에서 미세전류가 나오지 않을뿐더러 미세전류가 나온다고 해서 ATP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 교수는 “게르마늄 팔찌와 똑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8년 게르마늄 팔찌는 혈액 순환과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광고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공산품인 데다 업체에서 내세운 논문이 학술 논문이 아닌 가짜 논문으로 밝혀지며 논란이 됐다.
다만 부작용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낙언 식품공학자는 “효과가 없으니까 다행인 거다. 업체에서 말하는 대로 팔찌를 차고 있어서 ATP가 생성되면 사람은 하루에도 몇 킬로그램(kg)씩 살이 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상주 연세스타피부과 원장도 “ATP로 홍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효과는 크지 않아 부작용도 작다”라고 말했다.
해당 업체 측은 “팔찌를 착용한다고 해서 ATP가 생기는 개념이 아니다. 몸에 생체전류가 흐르고 그 전류로 인해 ATP가 활성화된다. 팔찌에서 나오는 미세전류가 생체전류와 흡사하기 때문에 생체전류를 증폭해서 ATP를 좀 더 많이 생성해 몸의 밸런스(균형)를 맞추는 것”이라며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 착용 후 처음 3~5일 정도 체내의 독소가 배출되면서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다만 반응이 영구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미세전류를 활용한 다른 제품은 어떨까. 집에서 관리하는 사람이 늘어나며 미세전류를 활용한 뷰티 디바이스 등 기기도 주목받는다. 미세전류를 이용해 마스크팩의 침투력을 높여주는 미세전류 마스크팩, 미세전류를 통해 두피의 혈액순환을 촉진해 탈모를 예방하는 미세전류 탈모 치료기가 대표적이다. 미세전류로 항바이러스를 차단한다는 미세전류 섬유로 만든 마스크도 홍보 전선에 뛰어들었다.
전문가들은 미세전류를 이용한 제품이 모두 터무니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효능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광호 중앙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미세전류가 상처 치료나 신경 재생 효과로 인한 통증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논문은 있다. 다만 미세전류 마스크팩이 콜라겐을 형성한다는 이야기는 비약이 심하다. 약물 전달 효과를 높이기 위해 미세전류 마스크팩을 썼다는 유럽 보고서가 하나 있지만 신뢰성 있는 논문은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유광호 교수는 “탈모 치료기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의 열에너지는 두피를 자극해 모발이 자라게 하기에 역부족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주덕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교수는 “피부는 장벽이 두꺼워서 화장품이 침투하기 어렵다. 미세전류를 통해 피부 세포를 활성화해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 수 있다”며 “다만 기기나 미세전류 세기에 따라 자극이나 효과가 다르다”고 말했다. 이상주 원장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실험을 하지 않은 이상 미세전류 마스크로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도 공허한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게르마늄 팔찌, 미세전류 팔찌 등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제품이 판매되고 입소문을 타는 현상이 반복되는 데에는 국내에서 대체의학이나 유사 과학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품의 홍보문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업체들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며 “소비자들도 특허가 효능을 확인해주는 장치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비싸다고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도 거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http://www.bizhankook.com/bk/article/20298 2020.07.16(목) 15:27:27
[이덕환의 과학세상] 가공식품의 합리적 소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크릴 오일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140개 제품 중 49개에서 잔류허용기준 이상의 에톡시퀸이나 추출용매가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사용이 금지된 용매가 검출된 제품도 있었다. 부적합 제품은 전량 회수·폐기 조치했고, 소비자들에게는 반품을 당부했다. 지난 7월에는 829건의 허위·과대 광고도 단속했다. 9월부터는 제조사가 스스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한 경우에만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불법성과 유해성은 구분해야
크릴 오일의 효능에 환호하던 소비자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식약처가 유해성을 확실하게 밝혀내지도 않았으면서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이다. 체중 60kg의 성인이 매일 크릴 오일 제품 1알씩 먹더라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식품안전 전문가들의 입장도 어정쩡하다. 크릴 오일 제품이 ‘안전하다고 믿는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지만 조금은 불안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 식약처도 적극적인 반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식약처가 제기한 문제는 제품의 안전성이 아니라 생산 공정이었다.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하고, 금지 물질이 검출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특히 일부 제품에서 검출된 에톡시퀸은 양식장에서 쓰는 사료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이다. 남극의 청정 해역에서 잡은 크릴 새우에서 검출될 이유가 없다. 그런 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들어있는 제품을 규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식약처의 규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식약처의 규제는 고속도로의 과속 단속과 같은 성격이다. 제한속도를 위반했다고 반드시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제한속도를 지켰다고 100%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속을 한 운전자는 단속 된다. 교통경찰이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단속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따라 정해놓은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단속을 하는 것이다.
잔류허용기준을 지키지 않았거나 사용이 금지된 용매를 사용한 크릴 오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제품을 하루에 한 알씩 먹어도 건강에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가공식품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식약처의 입장에서는 그런 지적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시중에 유통 중인 제품이 식약처가 고시한 기준을 지켰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금지된 용매를 사용하고, 허용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은 식약처가 아니라 제조사다. 기준을 지키지 않은 제품도 ‘안전하다고 믿고 싶다’는 전문가의 발언은 부적절한 것이다. 식약처의 고시가 합리적인지의 문제는 규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교통경찰이 제한속도가 합리적으로 설정되었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식약처의 고시가 크릴 오일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가공식품은 사회악이 아니다
이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대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코라나19 팬데믹을 통해서 더욱 절실하게 확인하게 된 명백한 팩트다. 식품의 생산과 소비가 확실하게 단절된 현실에서 전통적인 슬로푸드만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좋은 품질의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를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현명하게 소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근거 없는 대중적 인기에 대한 관심은 의미가 없다. 진홍색 크릴 오일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작년부터였다.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8년 3톤을 수입하던 크릴 오일이 2019년에는 588톤으로 늘었고, 올해는 5월까지 473톤이 들어왔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2018년에 57건이었던 언론 보도가 작년에는 4,813건으로 무려 84배나 늘어났다. 구글에서도 무려 235만 개의 검색 결과가 얻어진다. 부작용에 대한 검색 결과도 9만 개나 된다. 그런데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나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식품의 화학적 성분에 대한 엉터리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크릴 오일에 들어있다는 아스타잔틴·인지질·오메가3에 대한 제조사의 일방적인 주장은 누가 봐도 지나친 것이었다. 심혈관 질환과 고지혈증에 탁월한 효과 정도가 아니다. 혈행 관리에 좋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여주고, 면역기능을 강화시키고, 강력한 항산화 작용이 있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시력저하를 막아주고, 눈 건강과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비만·고혈압·뇌졸증도 줄여준다. 두뇌 활동과 기억력을 향상시켜주고, 치매·노화도 억제해주고, 관절염과 통증도 없애준다는 광고도 있다. 만병통치의 명약은 마음이 약한 소비자를 노린 고약한 상술일 뿐이다.
소비자의 얄팍한 주머니를 노리는 제조사들은 곧바로 들통이 날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 크릴 오일 제품이 식약처가 인정해준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주장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크릴 오일 광고에 대해서 사전심의를 받았다는 주장도 황당한 것이다. 광고의 사전심의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크릴 오일이 혈관에 쌓여있는 지방뿐만 아니라 식용유·소기름·돼지기름도 녹여버리는 ‘기름 청소부’라는 주장도 황당한 거짓말이다. 식용유를 녹여버리는 청소부가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도 없다.
소비자가 똑똑해져야 한다. 가공식품의 화학적 성분을 기적의 만병통치약으로 둔갑시키는 선정적인 마케팅 전략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일파만파로 과장하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의학적 효능이나 유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언론 보도나 인터넷 정보는 처음부터 믿을 이유가 없다.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만 ‘화학물질’로 만든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정성들여 만든 슬로푸드도 역시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것이다. 화학물질이 없는 세상에서는 우리 자신도 생존할 수 없다.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그리고 생활화학용품을 부정적인 ‘화학 혐오증’의 온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의 화학물질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화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39753 2020.09.16
[이덕환의 과학세상]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근거 없는 '괴담'
엉터리 괴담에 흔들리지 말아야
후쿠시마 오염수에 들어있는 삼중수소가 가장 두려운 방사성 핵종으로 알려진 세슘-137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는 티머시 무소라는 미국 생물학 교수의 발언은 어처구니없는 괴담이다.
“세슘-137이 체내에 들어왔을 때 투과력이 강한 감마선은 몸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삼중수소의 베타선은 그렇지 못해 내부 피폭이 심각하다”는 언론에 소개된 그의 발언은 과학적으로 명백한 오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엉터리다.
감마선은 종자(種子)나 식품에 붙어있는 미생물을 파괴해서 죽여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전자기파다. 세슘-137에서 방출된 감마선은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우리 몸의 세포에 치명적인 피해를 남기게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방사선 피폭에 의한 독성(부작용)은 단순한 ‘생물학적 효과비’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독극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방사선 피폭에 의한 부작용은 피폭량에 의해서 결정된다. 아무리 효과비가 낮더라도 피폭량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반대로 효과비가 아무리 높아도 피폭량이 충분히 적으면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용량(用量)이 독(毒)을 만든다’는 로마의 명의(名醫) 파라셀수스의 명언이 바로 그런 뜻이다.
삼중수소와 관련된 과학 문헌 70만여 건을 전수 조사했더니 “사실상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전무하다”는 그의 발언도 역시 조심스러운 것이다. 삼중수소의 인체 영향에 대한 과학 연구가 없었다는 사실은 삼중수소의 인제 위해성에 대한 우려가 실제로 심각하지 않다는 가장 확실한 실증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인체 위해성이 심각하지 않은 방사성 핵종의 인체 위해성을 애써 연구해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거꾸로 인체 위해성이 심각한데도 본격적인 연구를 외면할 정도로 무책임하지도 않다.
실제로 삼중수소 피폭으로 심각한 건강 문제를 경험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런 삼중수소가 후쿠시마 오염수의 경우에 갑자기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억지임에 틀림이 없다.
자신의 발언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설픈 생물학자를 ‘저명 학자’나 ‘석학’이라고 소개하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잘못된 관행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발언의 내용에 대한 확실한 고민도 없이 ‘미국 대학교수’라는 이유만으로 ‘과학적 사실’인 것처럼 요란스럽게 강조하는 것은 하루빨리 청산해야만 하는 몹시 부끄러운 ‘사대주의적 관행’일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포기하고 ‘장기 저장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환경단체들의 주장도 억지다. 흙이나 돌과 같은 고체 상태의 폐기물이라면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액체 상태의 오염수를 장기간 안전하게 저장하는 일은 비현실적이다.
저장탱크의 규모를 원유 저장탱크처럼 키우면 된다는 공학자의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대형 저장탱크가 더 안전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석촌호수 같은 인공호수를 만들 수도 있다는 억지도 황당한 괴담이다.
후쿠시마에서 방류된 오염수에 들어있는 방사성 핵종이 ‘해류’를 따라 우리나라로 한꺼번에 몰려올 가능성도 걱정할 이유가 없다. 빠른 물살을 뜻하는 해류는 오염물질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과학적 진실이고 일반적인 상식이다.
해류가 언제나 일정하게 흐르는 것도 아니다. 삼중수소가 무겁기 때문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그래서 바다 밑에 사는 넙치나 조래류를 경계해야 한다는 괴담도 바닷물의 대류를 고려하지 않은 엉터리 주장이다.
오염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희석’(稀釋)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물론 방사성 핵종이 희석에 의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희석된 총량을 모두 마시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총량은 변하지 않지만 인체 독성은 희석에 반비례해서 줄어드는 것고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공학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과학적 상식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화물선의 평형수에 대한 괴담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삼중수소가 생물체의 몸속에 누적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삼중수소는 베타선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화학적으로는 수소와 똑같은 생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몸속의 지방(脂肪) 속에 녹아 들어가서 누적되는 수은과 같은 중금속과는 전혀 다르다.
사람의 몸속에서 삼중수소는 다양한 생리작용 덕분에 대부분 일주일 정도가 지나면 배설된다. 바다에 사는 어류의 경우에는 2~3일 지나면 대부분 배설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선 피폭에 의한 부작용이 대표적인 만성 질환인 암의 발생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방사성 핵종으로 오염된 바닷물이나 수산물을 한 번 섭취하거나 접촉했다고 당장 치명적인 암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서 반복적‧지속적으로 섭취하지 않는다면 당장 재앙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콜레라나 살모넬라에 오염된 수산물처럼 야단법석을 떨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 설치된 1000여 개의 대형 저장탱크에 들어있는 오염수의 양이 엄청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오염수를 한꺼번에 방류하는 것이 아니다. 하루에 125톤 정도의 오염수를 방류한다. 하루 400명이 배출하는 하수와 같은 규모다.
후쿠시마 해안에 있는 100가구의 아파트 1동에서 배출되는 하수를 ALPS(디핵종제거장치)로 처리하고 400배로 희석시켜서 방류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물론 공짜도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의 방류를 반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당장 재앙적인 피해가 발생할 것처럼 공포에 떨 이유도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에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 방사성 핵종의 총량은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에 들어있는 양보다 1000배 이상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6년 가까이 후쿠시마 근해의 수산물 채취를 금지했고 지금도 방사성 핵종에 오염된 수산물이 발견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심각한 피해가 확인된 경우는 없었다.
일본 정부가 IAEA와 합의한 방류 절차를 확실하게 지켜서 이웃 국가를 안심시켜줘야만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국가적 신뢰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경계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고 어설픈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괴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부끄러운 광우병 대란을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59737 2023.05.09 13:06